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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협의회, SS 레인 빅토리호서 ‘돌아오지 못한 375명’ 추모

샌페드로(캘리포니아주)= 한미동맹협의회(U.S. Korea Alliance Association)가 9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 샌페드로 항 52번 부두에 정박 중인 역사적인 화물선 SS 레인 빅토리(SS Lane Victory) 선상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375명(The 375 Who Never Came Home)’ 제2회 추모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뒤 끝내 귀환하지 못한 캘리포니아 출신 미군 장병 375명의 이름을 76년 만에 다시 부르는 자리였다. 이 가운데 91명은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장진호(Chosin Reservoir) 전투에서 흥남·원산으로 이어지는 철수 도로를 지키다 희생된 이들로, 평균 연령은 불과 22세였다. 나머지 284명은 전쟁 기간 공중·해상·지상에서 실종됐으며, 전체 평균 연령은 26세, 최연소자는 17세였다.

한미동맹협의회 조현식 회장은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며 “미군 장병들의 희생과 인도주의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G7 수준의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 가르침을 2·3세대가 이어받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알렉스 가족에게 특별한 환영의 뜻을 전했다.

레인 빅토리 이사회 릴리 헤레라 회장은 “어린 시절 MASH 시트콤 외에는 한국전쟁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회고하며 “1950년 12월 이 배가 인도주의 임무로 전환돼 원산에서 약 7,000명의 피난민을 태워 부산으로 내려온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물창 3층까지 여성과 어린이로 가득 채우고, 남성들은 갑판에서 사흘간 혹한을 견뎠다. 여러분은 그 비극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회복력의 결과물”이라며 “한국전쟁은 잊혀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잊혀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해병대 출신으로 1952~53년 참전한 조셉 웡(94) 씨는 “나는 다행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3만3,000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바쳤다. 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며 “젊은이들에게 한국전쟁을 꼭 공부하고, 자녀들에게도 전해주길 바란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북5도민회 조명국 회장은 한국어로 “미군이 없었으면 우리는 부산까지 밀려 적화통일됐을 것”이라며 “미군 3만6,000여 명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리게 됐다. 한미동맹은 죽어도 잊지 못할 은혜”라고 호소했다. 란초팔로스버디스 폴 서 시장은 “나는 한인 이민자 2세이자 미 육군 출신으로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다. 장진호 전투의 용기가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했고, 그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유산을 이어가라”고 당부했다.

흥남 철수 당시 실제 이 배에 탑승했던 생존자 조응규 전 국회의원의 증언은 특히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내 인생은 세 시기로 나뉜다.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북한 공산 통치 시기, 그리고 1950년 12월 7일 SS 레인 빅토리의 인도주의 피난민 구조 작전으로 시작된 자유의 시기”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아버지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한 뒤 원산에서 장로교 목사로 사역하셨다. 미국 유학 경력과 기독교 목회자라는 이유로 공산 정권에 의해 ‘위협 인물’로 분류돼 투옥됐고, 1950년 10월 유엔군이 원산을 해방하기 직전 김일성 독재 정권에 의해 무참히 처형당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12월 6일 아침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원산 항구로 갔다. 11시간 동안 거대한 인파 속에서 줄을 서 기다렸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배에 탈 수 있는 피난민 대부분이 탑승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교회 신도였던 한 여성이 우리 가족 네 명이 철조망 밖에 남겨진 것을 보고 주체할 수 없이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가 출항 전 최종 점검을 하던 원산 군사정무관 대령의 주의를 끌었고, 그는 우리 아버지 목사님의 누구인지 즉시 알아차렸다. 대령은 직접 게이트를 열어 우리를 배로 인도해 주었다. 기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이 배와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군사·보훈청 제임스 제너 국장은 “375명은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공식적으로 실종 처리된 장병들”이라며 “그중 약 91명이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고, 오늘 학생들이 읽는 이름 중에는 17~21세의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은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꿈과 미래를 가졌던 또래”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 단위로 375명의 이름을 낭독하고, 각 가족 대표가 “우리는 기억한다(We remember)”고 응답하는 롤콜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됐다.

영 김 연방하원의원(캘리포니아 40선거구)을 대신한 애비게일 팩트만 보좌관, 샤론 쿼크-실바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박동우 수석보좌관, 태국 총영사관, 주LA 한국총영사관 정민 김 보훈담당영사 등도 한미동맹의 소중함과 희생을 기리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미동맹협의회는 “이 행사는 학생·학부모·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추모의 장”이라며 “장진호와 흥남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인도주의를 다음 세대가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